1984년 봄 무명가수 이동원이 시인 정호순이 일하는 잡지사를 찾아왔다.
정 시인이 모회사보(母社報)에 발표한 시 ‘이별길’을 읽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싶다고 했다.
흔쾌히 승낙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가을쯤 워크맨에 노래를 녹음해 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시가 가진 원형 리듬을 그대로 살리면서 부드럽고 사색적인 음색을 담은 울림이 큰 노래가 탄생했다.
떠나는 네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네가 떠난 뒤에도 내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직 늦지 않았다고 먼저 떠나는 곳, 나는 너의 뒷모습에 깔리는 저녁놀이 될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 남의 집이 어두워지면 나의 너를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라.
당시 이동원은 33세였고 정호승은 한 살 위였다.
서정적 감성이 맞아떨어져 탄생한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동원은 KBS 10대 가수에 선정됐고 음반은 100만 장 이상 팔렸다.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등 베스트셀러 시집을 낸 정호순은 여러 시가 노래로 이뤄졌지만 이별의 노래가 가장 애착을 느낀다고 말했다.
안치환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나,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도 정호승의 시다.
이동원도 정 시인의 다른 시에 곡을 붙인 다시 기다리는 편지 봄길도 발표했다.
이동원은 1988년 정지영의 시에 곡을 붙여 박인수와 함께 부른 향수를 발표하며 국민 가수의 반열에 올랐다.
‘넓은 들판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개울이 흐르고 얼룩덜룩한 흰색이 눈이 녹아 금빛 울음소리를 내는 곳’으로 시작되는 정지용의 시도 국민들의 애송시가 돼 재조명됐다.
이동원이 7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좀 더 늦게 출발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