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에 감독 이름이 들어간, 너무 ‘어이가 없었던’ 이유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1986년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 <이장호의 외인구단> 양현석(utopia 697) 22.07.11:28 최종 업데이트 22.07.11 12:25 2012년 상업영화 데뷔작 <은교>로 청룡상과 대종상을 비롯한 5개 영화제 신인상을 석권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괴물 신인’ 김고은은 2016년 1월 첫 드라마에 출연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큰 인기를 끌며 연재된 승키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치즈 인 더 트랩’이었다.
<치즈인더트랩>은 10~20대 여성 독자들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어서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이 나왔을 때 원작 팬들의 기대감도 한껏 올라갔다.
하지만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의 주인공 홍설을 연기한 김고은 원작 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원작을 통해 독자로 자리 잡은 홍설의 이미지와 드라마에서 김고은이 표현한 홍설의 이미지가 기대만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즈인더트랩>뿐만 아니라 원작이 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원작과 멀어지면 원작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비판이 따르기 때문에 배우는 보다 신중한 캐릭터 연구와 연기가 필요하다.
반면 2020년 방송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처럼 주인공의 이미지가 원작과 일치한다는 호평이 쏟아지면서 드라마의 인기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문학 작품에서 비교되는 대상이 같거나 해당하는 비율을 ‘싱크로율’이라고 한다.
그리고 역대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한국영화 중 원작 주인공과 가장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 캐릭터는 단연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오혜선을 연기한 최재성이었다.
▲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멀티플렉스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80년대 중반 서울에서만 28만 관객을 동원했다.
ⓒ 판영화사(주)
890년대를 주름잡은 순정파 터프가이
학창 시절 복서를 지망했던 최재성은 부모의 반대로 꿈을 접었지만 1983년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잘생긴 반항아 이미지의 최재성은 1984년 청소년 드라마 고등학생 일기에 출연해 눈길을 끌었고 고향 초원에 지는 별 등에 출연했다.
그렇게 드라마 중심으로 활동하던 최재성은 1986년 이장호 감독이 연출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주인공 오혜선 역으로 발탁돼 스크린에 데뷔했다.
최재성은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세상 무섭지 않은 반항아지만 사랑하는 엄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순정파 터프가이’ 오혜선을 연기했다.
최재성이 원작 오혜선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서울에서만 28만 관객을 모으며 1986년 한국영화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극장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외인구단> 이후 인지도가 급상승한 최재성은 1988년에만 4편의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렇게 청춘스타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최재성은 1991년 고 김종학 감독이 연출한 <여명의 눈동자>로 일본군 조선인학도병 최대치를 연기했고 1992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달렸다.
최재성은 1992년 드라마 ‘두려움 없는 사랑’과 1994년 영화 ‘장밋빛 인생’에 출연해 90년대 중반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90년대 후반부터 부쩍 활동이 줄었다.
그렇게 대중에게 ‘왕년의 청춘스타’로 점점 잊혀진 이름이 된 최재성은 2002년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1부 최종 보스’였던 마루오카 경부를 연기하며 길었던 슬럼프를 씻어냈다.
2006년 불멸의 이순신에서 연기한 원균과 2007년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연기한 지우(남상미)의 아버지이자 청방파 보스인 마오 역시 중년 배우 최재성의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지난 2013년 <대왕의 꿈>에서 김유신 역으로 캐스팅돼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부상 회복 후 계백 역으로 합류한 최재성은 2019년 <60일, 지정생존자>에서 국군 합참의장을 연기하며 카리스마를 뽐냈다.
최재성은 이제 환갑을 앞둔 노장 배우가 됐지만 지난 3월 종영한 KBS 주말드라마 ‘신사와 아가씨’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소시민을 연기하는 등 햇수로 40년째 대중에게 꾸준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남성의 순정을 이용해 남편의 승리를 이끈 빌런 엄지
▲ 야구계에서 탈락한 외국인 구단 선수들은 무인도에서 지옥훈련을 받고 돌아와 야구 괴물로 진화했다.
ⓒ 판영화사(주)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1983년부터 1984년까지 연재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현세 작가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정상적인 제목에 갑자기 이장호 감독의 이름이 들어간 것은 당시 영화의 등급을 심의한 국가기관에서 ‘공포’라는 제목이 관객들에게 공포심과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공교롭게도 1986년은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됐지만,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엄지(이보희 분)라는 최악의 ‘빌런’이 오혜선(최재성 분)이라는 다정하고 재능 있는 청년의 삶을 망치는 무서운 영화다.
실제 엄지는 마동탁(맹상훈 분)이라는 프로야구 최고의 강타자와 결혼해 옛 연인의 행복을 기원하기는커녕 오혜선에게 “나는 단란한 가정이 있지만 당신은 다시는 내 곁을 떠나지 말라”는 잔인한 이야기로 오혜선의 삶을 파멸시킨다.
오혜선의 비극적인 사랑은 재미를 위한 장치였지만 원작과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지옥훈련 만능주의’는 상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외국인 구단 선수들은 무인도에서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 지옥훈련을 받으며 야구 괴물로 진화했지만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또 원작부터 단행본 1권 반에 걸쳐 진행되는 서부와 유성(영화판에서는 해태)의 한국시리즈가 영화에서는 약 18분으로 압축된 것도 영화 버전의 아쉬운 부분이다.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영화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김도향과 윤신혜, 정수라 등 인기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OST 역시 제법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특히 오혜선의 주제곡이었던 정수라의 ‘나는 너에게’는 당시 유일무이한 가요순위 프로그램이었던 ‘가요톱텐’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 김도향의 ‘고독한 강자’와 윤신혜의 ‘사랑의 테마’ 등이 영화 곳곳에 깔리며 인물들의 정서를 잘 담아냈다.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크고 작은 아쉬움도 있었지만 1편으로 끝났다면 그 시절 재미있었던 야구영화 겸 멜로영화로 기억됐을 것이다.
하지만 한 편의 성공에 고무된 제작사에서는 맹인이 된 오혜선이 초인적인 청각을 통해 야구선수로 재기한다는 설정의 속편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장호 감독을 비롯해 안성기와 이보희, 맹상훈, 조상구 등 1편의 주역이 대거 교체된 〈이장호의 외인구단2〉는 서울 관객 4만 명에 그치며 흥행 실패했다.
80년대 섹시스타에서 악녀로 변신
▲ 80년대 섹시스타로 이름을 날린 이보희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오혜선의 순정을 이용하는 악녀로 변신했다.
ⓒ 판영화사(주)
2000년대 이후에는 주말드라마를 중심으로 전업주부 역할을 많이 했지만 사실 8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이보희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섹시스타였다.
1983년 『일송정 푸른솔운』으로 영화 데뷔한 이보희는 『바보선언』, 『무릎과 무릎 사이』, 『오우동』 등에 출연했으며 80년대 초중반의 원미경, 이미숙과 함께 『트로이카』로 활약했다.
<야인시대>의 시라소니로 유명한 조상구는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외인구단 유일한 투수이자 에이스 조상구를 연기했다.
영화 출연 당시에는 본명인 최재현이라는 이름을 쓰던 조상구는 ‘외인구단’ 이후 활동명을 조상구로 바꿨고 1987년 이현세 작가 원작인 ‘지옥의 링’에서는 오혜선을 연기하기도 했다.
조상구는 <타이타닉>, <레옹> 등 무려 1000편이 넘는 영화를 번역한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외국인 구단 플레잉 코치이자 한 팔이 없는 최광 역은 <무풍지대>의 유지광, <야인시대> 금강에서 유명한 배우 나한일이 맡았다.
해동검도의 창시자이기도 한 무도가 겸 배우 나한일은 전성기 시절 액션 연기와 멜로 연기가 모두 가능한 몇 안 되는 배우로 이름을 날렸다.
나한일은 1편에 이어 속편에도 출연한 배우 중 한 명인데, 속편에서 최광은 뿔뿔이 흩어져 있던 선수들을 다시 모아 외인구단을 재결성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